2006년 새로 탄생한 포뮬러 V6 아시아 by 르노(이하 FV6A)의 첫 경기에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제 대회에 참가하는 이레인 팀이 원투 피니쉬를 기록했다. 이 챔피언쉽은 현재 아시아에서 열리는 국제 포뮬러 경기 중 최상위 클래스로 차량은 3500cc, 370마력, 38Kgm 토크의 엔진을 얹고 F1과 같은 방식인 패들쉬프트(스티어링휠에 변속장치가 달려있는 방식)가 적용된 Formula Renault V6이다.
5월 14일 세팡 F1 경기장(5.542Km)에서 열린 FV6A의 개막전에서 이레인의 드라이버인 카룬 찬독(인도, 22)이 폴투피니쉬를 기록하며 역사적인 첫 우승을 차지했다. 두 번째로 체커기를 받은 드라이버 역시 이레인의 한스 린(대만, 25)으로 1,2위를 이레인이 독점하며 아시아 최강의 팀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올해 F1 예선 방식과 같은 녹아웃 시스템(1차 예선에서 가장 느린 차량 2대가 빠지고 2차 예선에서 역시 2대가 빠진 뒤 마지막 3차 예선을 치러 그리드를 정한다.)으로 13일에 열린 예선에서도 카룬은 1'58"324의 코스레코드를 세우며 경쟁자들을 멀리 따돌렸다. 이 기록은 2위보다 0.666초 빠르고 3위와는 1초 이상 차이가 나는 기록이다.
경기가 열린 세팡 써키트에서 A1 GP의 최고 기록이 1'54"441임을 감안한다면 이 차량의 성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전인 스프린트 레이스에 이어 열린 그랜드 레이스에서는 연속되는 사고로 3번이나 스타트를 하는 해프닝이 연출됐다. 1위인 카룬 찬독에 이어 2위에서 출발한 한스 린은 계속되는 재 스타트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시동을 꺼트려 피트 스타트를 했다. 피트에서도 재차 시동을 꺼트리며 경기를 망쳤다.
한스 린이 없는 가운데 독주를 하던 카룬 찬독은 2위 아난다 미콜라(인도네시아, 팀 유라시아)와의 간격을 11초 이상 벌이던 14랩에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자마자 시동이 꺼지며 차에서 내려 리타이어 했다. 원인은 엔진 배선 트러블. 르노스포츠에서는 정확한 원인규명을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 1위와 2위가 없어진 덕분에 아난다 미콜라는 운 좋게 우승컵을 손에 넣었다.
우승을 한 아난다는 바로 이레인 팀으로 달려와 이번 경기도 이레인이 가장 먼저 결승라인을 통과했다고 말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유는 두 번째 스타트에서 사고로 프론트윙과 노우즈를 잃었으나 유라시아 팀은 스페어 파트를 준비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경기에 참가하지 못할 뻔한 것을 이레인에서 스페어 파트를 빌려 경기에 참가한 것이다.
한편 유일한 한국인 참가자인 이국현 선수(26, CT 모터스포츠)는 Sprint Race에서 6위에 올랐으나 오후에 벌어진 Grand Race에서는 두 번째 스타트에서 사고로 리타이어 했다.
1,2전이 끝난 현재 드라이버 챔피언쉽에서는 2전에서 운 좋게 우승한 아난다 미콜라가 1위로 올라섰고 두 경기 모두 시상대에 오른 하메드 알 파단(바레인, 메리투스)이 2위, 그 뒤로 한스 린과 2전에서 아쉽게 리타이어한 카룬 찬독이 3,4위를 기록 중이다.
카룬은 2전에서의 불운으로 비록 현재 드라이버 챔피언쉽에서는 4위에 머물러 있지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이 경기가 끝난 후 카룬은 FOM(Formula One Management)의 회장인 버니 에클레스톤에게 축전을 받았다.
시리즈 우승팀에게는 50,000유로의 상금을 주는 팀 챔피언쉽에서는 이레인이 33점으로 2위와 10점 차이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AFOS에는 올해 4개의 챔피언쉽이 있다. FV6A, 포르쉐 카레라컵 아시아(PCCA), 포뮬러 BMW 아시아(FBMW), ATCC(Asian Touring Car Championship)이 그것이다. 이레인은 이들 중 FV6A와 FBMW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번 대회는 이레인에게 매우 힘든 것이었다. FV6A 팀을 처음으로 만들며 2달에 걸친 준비를 했고 처음 치러지는 경기라 예상한대로 진행되지 만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힘들게 준비한 경기인데 별다른 문제없이 진행되던 FBMW에서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올해부터 F1 GP 써포트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한 이벤트에 3경기를 치루는 빡빡한 일정인 FBMW에서 엔진교환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레인은 이번 경기에서 두 번의 엔진교환을 해야만 했다.
이레인 드라이버인 샘 아베이가 지난 F1 GP 써포트 경기에서 사용한 엔진보다 시즌 전 연습에서 사용했던 엔진의 성능이 데이터 상으로 더 나은 것으로 나와 이번 경기 연습 전에 엔진을 교환했다. 하지만 4월에 세팡에서 열렸던 공식 테스트에 참가한 다른 드라이버들과 달리 연습에 참가할 수 없었던 샘은 거의 두 달간의 공백을 경기에서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다. 폴포지션을 차지했던 1전과는 달리 3위로 예선을 마친 샘은 토요일 오후에 열린 3전에서 순위에 변화 없이 3위로 경기를 마쳤다.
일요일인 5월 14일 오전에 열린 경기는 샘과 이레인 팀 모두에게 가슴 조이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3위로 출발한 샘은 2위 자리를 놓고 제임스 그룬웰(태국, 메리투스)와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곧 추월할 것 같던 샘이 중반이 지나면서 조금씩 멀어졌고 다시 후반이 되면서 페이스를 잃은 제임스와 만났다.
마지막 랩에서 백스트레이트를 지날 무렵 장내 아나운서는 '샘 아베이'를 외치기 시작했다. 현지어인 말레이어로 방송되는 멘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레인의 모든 팀 스탭들은 추월한 것으로 판단하고 호기심과 기쁨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우승한 얼 뱀버(뉴질랜드, 메리투스)의 뒤를 이어 백스트레이트를 지나 마지막 코너를 돌아나오는 것은 샘과 접전을 벌이던 제임스였다. 몇 초가 지난 뒤에야 비로소 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샘의 차에서 연기가 나는 것이 보였다. 결승선을 지나자마자 샘은 차를 바로 세웠고 이때 엔진에는 벌써 불이 붙어있었다.
소화기로 불을 끈 차량을 오후 경기까지 바로 준비하긴 무리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샘은 올해 드라이버 챔피언쉽에서 선두를 다투는 드라이버이고 그 이번에 우리 팀을 믿고 계약한 드라이버이다. 이레인의 모든 스탭들은 비상체제에 돌입했고 모두 하나가 되어 차량 준비를 도왔다.
결국 샘은 아무도 오전에 엔진에 불이 난 차라고 생각할 수 없는 완벽한 모습의 차량으로 오후 경기에 참가했고 팀원들의 노고에 보답이라도 하듯 2위로 경기를 마쳤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샘은 ‘모두 하나가 되어 나를 경기에 내보내기 위해 노력한 이레인 팀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필자가 많은 경기를 치렀지만 이번 경기가 아주 힘들었고 잊지 못할 경기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아직도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다. 월드컵의 시즌이 다가오니 2002년 이맘때 히딩크 감독이 얘기했던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