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이레인 전홍식 팀장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새해 벽두부터 타국살이(?)를 시작한 터라 요금 비싼 국제전화를 통해야만 연락이 닿는 반 외국인이 된 탓이다. 전 팀장의 2006년이 이렇듯 분주하게 된 것은 이레인의 올해 스케줄이 그만큼 꽉 찼다는 얘기. 국내 활동보다 해외 레이스에 주력해온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팀 이레인’을 찾는 드라이버들이 크게 늘어난 결과물이다.
이 달에도 ‘물 건너갔다’고 생각한 3월 하순, 4월호 마감을 코앞에 두고서야 전홍식 팀장과 짧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얼굴 보기 어렵다”는 기자의 말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전 팀장. 잠시 숨을 돌린 뒤 이어진 답변은 그의 빠듯한 스케줄을 충분히 대변해주었다.
“올해 자그마치 183일 동안 해외에 머물러야 해요.”
1년 가운데 절반을 해외 투어 레이스에 쏟아야 함은 물론 국내에서도 좀처럼 쉴 틈이 없는 생활의 연속. 그러나 전 팀장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국내 레이싱팀 가운데 최초로 해외에 진출해 괄목할 만한 수확을 일궈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시안 투어링카 챔피언십(ATCC)으로 출발해 2005년 포뮬러 BMW 아시아에서 챔피언 팀으로 등극했고, 올해는 포뮬러 BMW 아시아와 포뮬러 르노 V6, 그리고 아시안 포뮬러 르노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나아가고 있는 이레인은 이제 국내보다 해외에서 유명세를 치르는 인기팀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전홍식 팀장, 그의 오늘은 ‘꿈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믿음을 굳건하게 실천한 개척자 정신에서 출발한다.
전문가가 되겠다는 의지로 역경 극복해
전홍식 팀장이 걸어온 길은 미캐닉 지망생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1990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사실 전공에는 별다른 애착을 갖지 못했다. 오히려 어려서부터 막연하게 좋아한 자동차, 특히 자동차 디자인에 더 관심을 쏟았고, 그로 인해 전공보다 산업디자인학과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후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당시 국내에서 유일한 자동차 디자인센터인 ‘아트테크’ 윤대열 선생을 찾아갔다. 윤 선생은 6개월간 자동차 디자인과 영어를 공부하면 미국의 ACCD(Art Center College Of Design)에 입학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3학년이던 전 팀장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서 대학을 포기하지 못했다. 결국 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물색하던 중 ‘튜닝’을 접했고, 그것이 전홍식 팀장의 미래를 가름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즈음의 전 팀장은 자동차 메커니즘에 문외한이어서 자동차 정비학원에 등록해 이론과 실기를 부지런히 익혔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졸업 후 현장경험을 쌓기 위해 찾은 카센터에서 번번이 퇴자를 맞은 것이다. 6개월 뒤 힘겹게 일자리를 얻어 들어간 카센터는 그의 꿈을 풀어헤치기 어려운 곳이었다.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 튜닝관련 서적을 틈틈이 읽었지만, 가닥이 잡히지 않는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진 탓이다.
그렇게 흔들릴 무렵, 레이싱팀 캠소닉과 연이 닿은 전 팀장은 95년 2월부터 모터스포츠계에 발을 들였다. 이때부터 ‘미캐닉 전홍식’의 새 삶이 시작되었다. 레이싱팀 캠프에서의 생활은 비정상적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 아니었다면 버티기 어려울 만큼 고된 시간이었다. 그러나 순탄하게 미캐닉 생활에 적응할 무렵 예상치 못한 일이 그에게 다가왔다. 소속팀 캠소닉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다시 기로에 선 전홍식 팀장은 또 한 번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전문가’가 되겠다는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유학을 선택한 것이다. 전 팀장은 몇몇 후보지 중에서 호주의 TAFE 복스힐을 골랐다. 그 곳에는 ‘오토모티브-레이스카 테크놀로지’라는 학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학교 관계자가 우리나라에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96년 3월 호주 대사관을 찾아갔다. 영어로 작성한 이력서를 건네면서 이야기를 나누자 입학을 흔쾌히 허락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곧바로 유학준비에 들어갔고, 96년 5월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얻었다.
97년 4월, 짧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전홍식 팀장은 오일뱅크 레이싱팀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2000년 2월, 이승헌 대표를 비롯한 몇 사람이 뜻을 모아 현재의 이레인을 창단했다.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온 이레인과 전홍식 팀장은 새로운 각오로 또 다른 도전길에 올랐다. 아시아권에서 펼쳐지는 해외 투어 레이스에 국내 레이싱팀 최초로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당장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은 이레인의 초기 성적은 초라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시적인 성과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시안 포뮬러 시리즈에서 국내 드라이버 사상 첫 우승자(이동욱)를 배출한 것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포뮬러 BMW 아시아 루키 챔피언(유경욱)이 이레인 캠프에서 나왔고, 지난해에는 포뮬러 BMW 아시아 시리즈 챔피언을 길러내는 등 강팀으로 발돋움했다.
이레인의 해외 활동을 책임지는 전홍식 팀장이 올해 누비게 될 무대는 포뮬러 BMW 아시아와 포뮬러 르노 V6. 팀 매니저 신정엽, 그리고 소속팀 미캐닉들과 함께 포뮬러 BMW 아시아 2연패를 이루기 위해 연초부터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포뮬러 BMW 아시아 루키 챔피언 출신 유경욱이 2006 아시안 포뮬러 르노에 출전하게 되어 올해에만 183일을 해외에서 보내야하는 전홍식 팀장. 그는 우리나라 모터스포츠가 한층 발전하려면 좀 더 많은 드라이버와 팀들이 해외에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보다 앞선 레이스 현장에서 선진 모터스포츠를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전홍식 팀장 역시 그 길을 향해,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무한한 도전의 발걸음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전홍식 팀장의 휴대전화가 진동을 했다. 모처럼 귀국한 남편을 찾는 아내의 전화였다. 귀중한 시간을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자, 결혼비담을 들려주며 변함없는 애정을 은근히 과시한다.
한창 열애중인 전홍식 팀장이 아내 김수연 씨에게 받은 질문 한 토막은 “차가 더 좋아, 내가 더 좋아?”라는 대략난감의 극치. 당시 만용의 정점에 서 있던 전 팀장은 단호히 “차가 좋다”는 실언을 하였으나, 아내의 다음 한 마디에 평생 사랑을 다짐했단다. “그럼 나를 차만큼 사랑할 때까지 옆에 있어줄게!” 이후 결혼한 그들은 이 시대 한국사회가 원하는 세 자녀(첫 딸 혜원, 쌍둥이 아들 현석, 현호)를 낳고 행복행진곡을 울리고 있다.
글 박기현(ghpark@aracing.co.kr)
출처 오토레이싱(www.autorac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