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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 레이싱카 성형 마술사의 꿈
 
관리자 [2009-07-03 ]



유경사 이레인 레이싱팀 치프 미캐닉

 자동차 경주를 본 적이 있는가?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을 내며 질풍처럼 내달리는 네 바퀴들의 향연은 처음 보는 이들의 시선도 멈춰 세운다. 생명은 스피드. 인간의 질주 본능과 공포심 사이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관전자들마저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만든다.

포뮬러 원(F1)의 전설적 드라이버 미하엘 슈마허(독일)는 말했다. “인간의 발명품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자동차”라고. 그만큼 모터스포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 경주는 현대 테크놀로지의 집합체다. 100분의 1초를 다투는 레이스에 출전하는 레이싱카를 자동차라 부르지 않고 ‘머신’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동차 경주는 세계적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시장 규모로서는 유럽 축구리그를 능가한다. 자동차 경주의 최고봉인 F1 그랑프리는 축구 월드컵·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대접받고 있다.

자동차 경주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유럽 F1 무대 진출을 꿈꾸는 이가 있다. 이레인 레이싱팀의 치프 미캐닉(경주용자동차 정비사) 유경사(37) 부장. 20년 가까이 한국 모터스포츠 발전에 투신하고 있는 그는 “한국 미캐닉이 만든 차가 레이싱의 본고장 유럽에서 태극기를 달고 달리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자동차 경주의 ‘미다스의 손’

자동차 경주하면 드라이버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드라이버가 받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절반, 아니 그 이상은 미캐닉의 몫이다. 드라이버의 기량과 조건에 맞는 레이싱카를 제작하는 것부터 시작해 점검·조정·수리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레이싱업계에선 미캐닉을 자동차 경주의 ‘미다스의 손’으로 부른다.

사실 F1 그랑프리에서 일곱 차례나 종합 우승을 차지한 슈마허도 로스 브라운(영국)이라는 공학박사 출신의 걸출한 미캐닉의 지원이 뒷받침됐다. 미캐닉의 중요성은 브라운의 활약상을 보면 이해가 간다. 페라리 레이싱팀에서 수년간 슈마허와 호흡을 맞췄던 브라운은 슈마허의 은퇴(2006년 10월) 후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브라운이 혼다 레이싱팀을 인수해 만든 브라운-메르세데스는 지난달까지 치러진 올해 F1 그랑프리 8개 대회에서 여섯 차례 우승을 이끌어냈다.

유 부장도 마찬가지다. 그가 치프 미캐닉 겸 감독으로 있는 이레인은 지난해 350마력 이상의 대회인 2008 GT마스터즈(이하 GTM) 두 번째 시즌에서 정상에 올라, 2년 연속 종합 우승을 일궈냈다. 또 지난 5월 31일 강원도 태백에서 열린 2009 GTM개막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미캐닉에게 레이싱카는 자식과 같다. 내 손때가 묻은 레이싱카가 출발선에 들어설 때부터 가슴이 쿵쾅거린다. 우승을 한다면 그 기쁨은 드라이버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드라이버에서 미캐닉으로

그가 레이싱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고교 졸업 직후다. 어느 날 전북 군산에서 열린 대회에 구경을 갔다가 웅장한 엔진 소리와 스피드가 주는 전율에 온몸이 감전됐다. 처음엔 드라이버가 되려고 했지만 경제 사정상 미캐닉으로 전환했다.

운전 실력만 뛰어나다고 드라이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레이싱카를 타기 위해선 경제적 능력이 뒤따라야 한다. “레이싱팀에 속해 있는 드라이버라고 해서 공짜로 차를 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드라이버는 레이싱카에 대해 임대료를 지불하고 대회에 출전한다. 보험 가입이 안 되기 때문에 사고 시 차량 보수 비용도 드라이버가 낸다. 대신 레이싱팀은 드라이버에게 최적의 차량을 제공한다. 물론 임대료 없이 레이싱카를 타는 드라이버도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레이싱 미캐닉의 자격증은 따로 없다. 그도 일반 자동차 정비사 자격증을 딴 뒤 레이싱팀에 들어가 몸으로 부딪치며 익혔다. 대개 레이싱팀에 입단해 3년까지는 팀 운영을 파악하며, 4년차에 비로소 레이싱카를 만지게 된다.

일반 자동차와 레이싱카는 차원이 다르다. 대회가 정한 규정 내에서 가장 빠르고 성능이 뛰어난 차를 만들어야 한다. “아예 차를 새로 생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박스형 레이싱카의 경우 보디(몸체)·엔진·미션을 제외하곤 부품을 사들여 재조립한다. 레이싱 미캐닉이라면 자동차의 구조뿐 아니라 물리·역학·재료공학 등에 대해서도 빠삭해야 한다.” 그는 레이싱카를 만지는 일에 대해 “자동차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이라고 부연했다.

 

황무지를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사실상 국내 레이싱 미캐닉의 1세대인 그는 “레이싱 미캐닉은 차에 미치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든 직업”이라고 말했다. 레이싱은 국내에서 발달되지 않은 스포츠라 벌이가 시원치 않을 뿐더러 알아주지 않는다. 해외 시장 진출은 더욱 힘들다.

가장으로서도 ‘빵점’이다. 시즌(3~11월)이 열리는 동안 대회 참가와 차량 정비 및 교육을 반복하기 때문에 집을 비우기 일쑤다. 그 역시 집이 회사와 같은 용인에 있으면서도 잘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 모터스포츠 개척자라는 열정으로 묵묵히 땀을 흘리고 있다. “레이싱 미캐닉으로서 일을 시작한 1980년대 말 국내 모터스포츠 산업은 동호회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번듯한 레이싱팀이 열 개에 이르는 등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00년 이승헌 대표 등과 함께 이레인 레이싱팀을 창단한 이후 가시적 성과도 올렸다. 2003년 국내 레이싱팀으로는 최초로 아시아 자동차대회(AFOS)에 참가했으며, 말레이시아에 해외 지점을 두고 꾸준히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AFOS 대회에 출전하는 포뮬러BMW 4대와 포뮬러 V6는 모두 그의 손을 거친 레이싱카들이다.

성적도 좋다. 지난 4월 포뮬러BMW 퍼시픽 개막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5월 말 3라운드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단순한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카센터에서 일반 차량을 튜닝하면 되겠지만 레이싱의 정신을 훼손하고 싶지 않다”고 밝힌 그는 “이 길로 들어선 이상 국내 레이싱 산업의 발전을 위해 미캐닉 장인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에 걸맞은 위상을

한국은 2000년대 들어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관련 기술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자동차 경주에서는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는 나라들보다도 최소 십 년 이상 뒤처져 있다는 평가다. 그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이웃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16개의 자동차 경주 트랙이 있다. 현재 국내 트랙은 태백의 레이싱파크 한 곳뿐이다. 모터스포츠가 그 나라 자동차 산업과 함께 커 나간다고 볼 때 한국은 마니아 수준에서 너무나도 불균형적으로 진행돼 왔다.”

그는 내년을 국내 모터스포츠 산업이 도약하는 시기로 기대하고 있다. 전남 영암에 F1 경기장을 지어 F1 그랑프리 대회 개최를 진행 중에 있으며, 지난해 10월 확장 공사로 문을 닫은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도 재개장을 앞두고 있다.

그는 “세계 연간 100억 명이 TV로 관전한다는 F1 그랑프리 시상대에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현실적으로 힘들겠지만 꿈은 꿀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해내지 못하더라도 후배들이 유럽 F1 무대에서 태극기를 휘날릴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정회훈기자 hoony@ 사진=안윤수기자 ays77@